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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의 캠핑 No.8 - 보르도 & 듀드 드 삘라

드로잉미 2020. 3. 16.

 "와인 하면 생각나는 프랑스 보르도"

  2017년 8월 22일 한 달간 여행의 마지막 캠핑지, 보르도에 도착했다. (보다 정확히는 보르도 근교). 우리의 마지막 캠핑장은 Camping Bassin d'Arcachon (Flower La Canadienne)였다. 넓은 캠핑장에 수영장도 있고 텐트 pitch도 널찍한 캠핑장이었으나 역시나 바닥은 잔디 없는 딱딱한 모래바닥 캠핑장이었다. 영국의 푹신한 잔디가 그리웠다.

 

  한 달의 여름 동안 유럽에서의 햇빛을 받고 다닌 우리 가족은 모두 완전한 갈색으로 변해있었고 머리는 정리되지 않은 채 길어져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우린 나름대로 히피 한 유럽 갬성이라 우기며 신경 쓰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었다. 

 

보르도 캠핑장 Camping Bassin d'Arcachon

  신랑이 텐트를 칠 동안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장에 있는 수영장으로 갔다. 이제는 캠핑장에서의 이목을 집중받는 것에는 나도 무덤덤해졌다. 수영장 물이 차지 않아 아이들이 놀기 좋았다.  저녁을 먹으며 다음날 일정에 대해 신랑과 이야기하였다. 캠핑장 근처에 있는 유럽 최대의 모래 언덕 '듄드 듀 삘라'를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보르도까지 와서 와이너리에 가보지 않으면 섭섭하지 않겠냐는 신랑은 검색을 하더니 와인 테이스팅까지 할 수 있는 와이너리를 찾아냈다. 아이들에게는 포도 주스를 준다고 나와있어 오전에는 와이너리, 오후에는 듄드 듀 삘라에 가기로 했다.

 

 낮의 캠핑장보다 밤의 캠핑장이 더 여유가 있게 느껴진다. 각자의 텐트에서 잘 준비를 하느라 사방이 조용해진 가운데 어둑어둑한 불을 켜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시간은 낮의 시간과는 달리 더디게 가는 느낌이다. 좁은 텐트 안이 아이들은 왜 저렇게 좋을까 싶다. 

 


"아이들과 함께한 와이너리 투어"

 

  이튿날 아침, 와이너리로 향했다. 우리가 가본 곳은  Château d'Agassac. 와인의 도시 보르도 답게 주변에 이와 비슷한 와이너리들이 즐비했다. 영어로 설명을 해주는 와이너리 투어를 신청했는데 가이드 말로 한국분들이 많이들 오신다고 했다. 아마도 그러한 한국 리뷰를 보고 신랑이 선택했을 것이라 짐작이 되었다.

 

  예전에 이런 포도밭 정도 가지고 있으려면 돈 꽤나 있는 부자였어야 되나 보다 싶게 부잣집 주택 같은 건물이 포도밭 반대편에 위치해있었다. 포도밭을 자세히 보니 포도나무 밑으로 장미들이 심어져 있었다. 장미와 포도나무는 습성이 비슷해 포도나무에 병충해가 들기 전 장미나무에서 미리 그 증상을 확인할 수 있어 그 둘을 같이 키운다고 했다. 

 

와이너리 Château d'Agassac

  와인이 만들어지는 곳을 구경하고 숙성시키는 방을 지나 와인 코르크 마개를 만들어 내는 영상을 봤다.  와인을 숙성하는 과정이 천차만별이고 어려우며 그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 들은풍월이 있었지만 코르크 마개에 대해서는 이 날 와이너리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좋은 와인은 보통 코르크 마개로 병을 막으며, 그 코르크 마개는 포르투갈에서 만들어져 수입해온다고 했다. 와이너리 구석구석을 돌고 나서 와인 시음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와인 맛은 잘 모르는 촌놈이라 쓴 와인 보다도 아이들에게 주는 달달한 포도 주스가 더 탐이 났다.

 

와이너리 투어와 와인 시음

 "프랑스의 모래언덕 듀드 드 삘라"

 

  오후가 돼서 찾아간 곳은 프랑스의 사막이라 불리는 모래언덕 '듀드 드 삘라' (Dune du Pilat)였다. 보르도에서 바닷가 쪽으로 한 시간 정도 가야 하는 거리였으나 우리 캠핑장에서는 가까웠다. 유명한 곳이라 들어가는 입구부터 주차가 쉽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모래 언덕까지는 꽤나 걸어가야 했는데 뭣도 모르고 슬리퍼를 신고 간 나는 가는 내내 불편함을 참아야 했다. 모래 언덕이 보이기 시작하자 부드러운 모래입자에 이미 아이들의 입은 귀에 걸려있었다.

 

  모래사막이 아니라 모래 언덕인 이유는 그만큼의 경사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래도 올라가서 바다까지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간신히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러고는 신랑과 나는 퍼져버렸다. 아이들은 그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데굴데굴 굴렀다가 그 모래 언덕을 뛰어 올라오고 또 굴러내려 가고를 쉴 새 없이 반복했다. 

 

프랑스 모래언덕 '듄드 드 삘라'

  모래를 파고 놀고 있으니 주변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들어 다 같이 큰 구멍을 파느라 또 한참을 보내다 내려왔다. 캠핑장으로 돌아와서는 저녁을 해 먹고 남은 일정들을 이야기했다. 캠핑으로는 이 곳이 마지막이었다. 영국으로 돌아가면 이 텐트는 버려버리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신랑에게 이야기했다.

 


 

   영국에서 유럽으로의 여행을 시작할 때 영국인 친구에게 우리의 여름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니 너무 좋겠다며 반응하다가, 내가 캠핑으로 유럽여행이라고 했더니 "Oh my god, I'm so sorry. Sorry for you."라고 반응이 급변했었다. 엄마라면 모두가 알 것이다. 가족이 여행을 떠나는 데에 엄마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게다가 캠핑이라 하면 그 많은 일들의 제곱 정도로 쳐아 할 것이다. 

 

   군대를 다녀오면 웬만큼 힘든 일이 힘들지 않고, 큰 시험 준비를 한번 쳐보면 다른 시험에는 쉽게 도전할 수 있는 것처럼, 한 달간 유럽 캠핑을 다녀온 후에 나는 어떤 여행에도 두려움이 없어졌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만큼 힘들까 하는 그런 마음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었던 기억들은 잊히고 좋았던 순간, 행복했던 기억만 남게 되었다. 군대는 힘들었던 추억을 이야기하고 또 하지만 다시 가라면 모두가 질겁을 하고 고개를 내젓는다. 하지만  캠핑은 힘들어도 또 가고 싶은 매력을 지녔다. 

 

  캠핑의 고수들은 장비 준비에서부터 텐트를 완벽하게 치는 법, 캠핑 음식을 효율적으로 준비하는 법 등등 그들만의 노하우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노하우라고는 없었고 지금도 없다. 폼나는 캠핑 장비도 없었다. 그냥 마구잡이로 짐을 쌌고 닥치는 대로 해결했다. 낯선 나라들에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손짓 발짓, 짧은 영어로 어떻게든 내게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야 했다. 왜냐면 엄마니깐. 

  

  여행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훌쩍 컸다 생각했다. 하지만 크게 자란 건 아이들이 아니라 나였다. 까칠하고 까다롭고 날카롭던 내 모서리들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무뎌져 있었다. 일상에 지쳐 몸과 마음이 힘들다면 어디든 떠나야 한다. 떠나서 고생을 겪고 나면 내 일상의 편안함을 깨닫게 되고 집중해서 살 수 있게 된다. 지금 힘들다면, 떠날 준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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