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의 캠핑 No.4 - 이탈리아 '돌로미티'
"이탈리아의 알프스 '돌로미티' "
길치도 이런 길치가 있을까. 내가 자란 고향 지리도 나보다 손에 꼽을 정도로만 들러본 신랑이 더 많이 알고 있다. 알프스 하면 스위스, 오스트리아만 알고 있던 나에게 이탈리아 돌로미티 산맥의 마을 '코르티나 담페초'는 이름만큼이나 생소했다. 하지만 여행 해봤다 하는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에서 알프스를 꽤나 느끼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이탈리아의 돌로미티는 그보다 웅장하고 남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차 밖의 풍경을 보면서 감탄하고 있는 나와 신랑과는 달리 애들은 창밖에 놀이터를 멀리서도 발견하고는 제발 놀다 가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캠핑장으로 가서 텐트를 치고 준비해야 하는 나와 신랑의 조급한 마음을 뒤로 하고 '그래, 알프슨데, 놀아야지.' 싶어 차를 세웠다.
"유럽 곳곳에 어디에나 있는 아이들이 놀이터"
두 아이의 엄마로 유럽에서 있어보면 무엇보다 부러운 것이 아이들에 대한 한없는 호의와 배려이다. 살아가는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아이들을 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저 사람들의 의식은 우리 보다 한 단계 위이구나를 느끼게 되고 또 부러워진다.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눈총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우선권을 가지는 VIP 대접을 받는다. 무표정한 독일 가게 점원들도 쉬지 않고 까부는 우리 아이들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말로 귀엽다 비슷하게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러고는 나를 보고 애들 보느라 네가 힘들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찡긋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아이들을 아끼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은 어디를 가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자그마한 놀이터가 있다는 것, 그것으로도 알 수 있다. 알록달록, 번듯하게 지어진 놀이터는 아니지만 나무로 만들어져 자연과 어우러지는 자그마한 공간들이 여행을 하는 동안 어디서든 쉽게 발견 할 수 있었다.
"돌로미티 아래의 캠핑장 Camping Civetta"
놀이터에서 한 껏 놀아 기분이 좋아진 아이들과는 달리 얼른 가서 텐트를 치고 밥을 해야 하는 신랑과 나의 마음은 급해졌다. 게다가 하늘에서는 점점 검은 구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할 수록 일이 더 꼬이는 날이 있다. 이탈리아 돌로미티 아래 캠핑장에 부랴부랴 도착하여 얼른 텐트를 치자 하는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캠핑장 사무실이 점심시간이라며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이런 정보는 홈페이지에 나와 있지 않았다고 분해 하는 신랑의 마음과는 달리, 딱히 우리가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한 시간 가량을 기다렸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서야 텐트 자리와 시설 사용에 관해 안내 받고, 캠핑장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캠핑장은 'camping(Camping Civetta)'라 치면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캠핑 사이트와 함께 콘도 형태의 숙박시설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겨울에 스키를 즐기러 오는 관광객들도 많은 곳 같아 보였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텐트를 세우다"
비가 오기 전에 얼른 텐트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신랑과 나는 바쁘게 움직였다. 이탈리아 돌로미티 산맥 아래 작은 시골 마을 캠핑장에 우리가 들어서니 주변에서들 궁금한 눈빛으로 어찌나 쳐다보는지 뒷통수가 따가울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골에 가면 어르신 분들이 새로운 사람을 보면 궁금한 마음에 이리 보고 저리 보듯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눈빛으로 묘하게 읽혀진다. 룩셈부르크와 오스트리아 캠핑장에서의 눈빛이 '너희가 이런 곳을 어떻게 알고 왔지?'라는 경계의 느낌이였다면 이곳의 시선들은 그저 궁금한, 악의 없는 호기심 같은 느낌이었다.
텐트를 치고 이리저리 바쁠 동안 아이들은 역시나 놀이터로 가서 놀았다. 그림같은 돌로미티 산맥을 뒤로 하고 모래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은 알까. 지금 어디서 저렇게 노는지.
"평생을 기억할 순간, 빗 속의 캠핑"
대화의 희열에 김영하 작가가 나왔던 편을 인상깊게 보았다. 어쩜 저렇게 말을 잘 할까 하면서 김영하 작가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에는 그저 고개가 끄덕여졌었다. 그러면서 신랑에게 물어보았다. 유럽 캠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냐고. 운전하랴, 텐트치랴 고생스러웠던 순간들이 기억나는지 한참을 가만있다가 첫 캠핑지였던 '룩셈부르크'였다고 대답했다.
나와 아이들에게는 티를 내지 못했지만 영국에서 차를 가지고(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영국차를 몰고) 유럽으로 건너와 룩셈부르크라는 낯선 캠핑장에서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텐트를 쳐냈던 그 순간의 만감이 교차해서라고 했다. 내가 대답하고 싶어 신랑에게 질문했었다. 나는 이탈리아 돌로미티에서의 캠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였다. 텐트를 치는 동안에 흐려지던 하늘이 저녁을 해먹고 정리를 하려던 때부터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알프스 기운을 한 껏 내뿜는 그 빗속에서 아이들은 텐트 안에서 놀고 있었고 나는 신랑과 커피를 한잔 했었다. 그 때의 그 순간이 나의 대답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었는데 그 순간만 생각하면 가슴이 마구 뛰고 뭉클해진다.
세상 한 가운데 우리 가족이 넷이 똘똘 뭉쳐져 있었던 기분이었다.
"이탈리아 알프스의 작은 마을, 코르티나 담페초"
밤새 내리던 비는 둘째날 아침에 일어나자 그쳐있었다. 비가 오니 텐트 걱정에 잠을 잔듯 만듯 하였다. 아빠 엄마가 있다는 든든함은 아이들을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단잠을 자게 해 주는가보다. 아이들은 그 좁은 텐트 안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도 꿀잠을 잤다. 이 날은 '코르티나 담페초' 마을에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돌로미티 산 위를 올라가는 계획이었다. 내가 몰랐을 뿐이지 이미 유명한 관광지인 ‘코르티나 담페초’. 소박한듯, 낡은 듯 모든 것이 정겹게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다.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이 마을에서 돌로미티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산 위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산이 아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본 산 아래는 푸르른 잔디밭과 돌산맥들이 어우러진 이국적인 장관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보니 좀 더 올라가 볼 수 있는 길이 나 있었다. 높은 산 위에서 사방이 트여 시원한 길을 걸어 올라가자니 나도 모르게 신이 났다. 자연이 만들어낸 멋진 경관은, 말로도 사진으로도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저 각자가 느끼는 것
이 장관을 아이들이 좀 더 보고 느꼈으면 하는 것은 어른의 욕심이었다. 아이들은 길 위에 있는 돌들 중에 마음에 드는 모양을 찾느라 정신없었다. 언제 어디서든 놀거리를 찾아내는 아이들의 순발력은 천재적이다. 인간만큼 놀고 싶어 하는 본능이 강한 동물이 없다고 들었다. 그런 본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아이들이 커서도 그 본성을 억누르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코르티나 담페초’ 마을을 둘러보는데 마을 광장에서 피아노를 두고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이 자그마한 시골 마을에 피아노를 두고 연주하는 연주자의 자유로운 영혼이 둘째 아들의 자유로운 영혼과 교감했던 걸까. 쉴새없이 까불던 둘째 놈이 왠일로 조용히 서서 음악을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차오’라는 이탈리아어 인사를 수줍게 내벹었던 돌로 미티에서의 캠핑을 마치고 우리는 베니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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