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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의 캠핑 No. 4 - Snowdonia

드로잉미 2020. 3. 20.

영국에서의 캠핑 No. 4 - Snowdonia

 

"영국에서의 마지막 캐핑 Snowdonia"

 

 2년간의 캠핑을 마무리 하는 여행지는 북부 웨일즈에 위치한 스노우도니아 국립공원으로 정했다. 웨일즈 하면 그저 좋아서 웨일즈로 가자는 말에 오케이 오케이라고 외쳤다. 스노우도니아로 가기로 결정했다고 영국친구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하나 같이 가보고 싶은 곳이라 하였다. 그 중 한명은 그 해 가을에 스노우도니아에서 트레킹을 계획 하고 있다며 다녀와서 어땠는지 이야기 해 달라고 하였다.

 

   영국의 여름은 진짜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여름은 너무나 짧다. 우리가 영국에 처음 왔을 때도 여름이었다. 에어비엔비 숙소에 묵을 때였는데 호스트에게 날씨가 너무 좋다고 호들갑을 떨었더니 시큰둥한 얼굴로 2주 후면 이 여름도 끝난다고 대답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했었지만 2년간 영국에서 지내면서 그 말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짧다운 여름에, 아름다운 웨일즈로 떠났으니 어찌 안 좋을 수가 있겠는가.

스노우도니아를 찾아가는 길. 이미 아름답다. 

 

"넓디 넓은 캠핑장에서 친구를 만나다."

 

  2018년 6월 29일, 2박 3일을 일정으로 스노우도니아 캠핑장에 도착했다. 영국인들에게도 인기있는 휴양지인 만큼 꽤나 큰 캠핑장이였다. 주차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차에 있는 짐을 하나하나 텐트  pitch까지 날라야 했다.

 

넓은 잔디밭 위에 있는 자신의 번호를 찾아 자유롭게 텐트를 치면 되었다.

  짐을 나르는데 낮익은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영국에서 큰 아이가 학교를 다니기 전에 영어 튜터 수업을 했었다. 그 때의 인연으로 큰 아이 선생님이였던 웬디와 친구가 되었다. 캐나다 사람이지만 영국 남자 메튜와 결혼해서 영국에서 살고 있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창문은 열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설마 웬디? 아니 이 넓은 영국에서 그리고 또 이 넓은 캠핑장에서 우연히? 신기하게도 웬디네가 맞았다. 우리에게는 영국에서의 마지막 캠핑였고 웬디네에게는 영국에서 시도하는 첫 캠핑이였다. 서로가 만난 것을 믿을 수 없어하며 같이 텐트를 치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텐트장 옆에 자그마하게 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 물은 호수와 연결되어 있었다. 텐트를 치고 아이들은 모두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얉고 잔잔한 물이라 아이들이 놀면서 물고기도 잡기에 안성맞춤이였다.

 

"캠핑하면 카약"

 호수가 있는데 카약이 빠질 소냐. 저녁을 먹기 전에 카약을 타보기로 하여 호숫가로 가보았다. 왠일로 4명이 탈 수 있는 카약이 있어 온 식구가 함께 탈 수 있었다. 왠지 제일 앞이 쉬울 것 같아 내가 젤 앞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왠걸.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제일 앞의 노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물에 나가고 나서야 알았다. 아이들은 이리 저리 움직이지 방향에 맞게 저어야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 카약의 즐거움 따위는 느낄 수 없었다. 웬디네도 카약을 타러 나왔다. 신나하는 아이들과 아빠의 얼굴과 그늘진 엄마들의 얼굴은 두 가족이 모두 같았다. 카약을 타고 나와서 웬디와 나만 저걸 왜하냐며 궁시렁 거렸었다. 같이 궁시렁 거릴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좋았다. 

 

풍경은 그림 같으나 나는 뒷통수로도 웃고 있지 않은 느낌 and 웬디네 가족. 보이진 않아도 느껴지는 웬디의 마음

 

"스노우도니아 정상을 가다."

  둘째날은 스노우도니아 국립공원의 정상으로 가는 기차를 타보기로 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트레킹 마니아들의 코스인듯 싶었다. 영국의 산은 우리나라 산과는 달리 나무가 빽빽하게 있지 않은 편이다. 초록색의 풀들로 뒤덥혀있지만 나무는 거의 없는 초록색 민둥산 같은 느낌이었다. 그 산을 따라 꼬불꼬불 트레킹 길이 나 있는데 어른이 하루 반나절을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거리라 했다. 그래서 하루 일정으로 스노우도니아에 트레킹을 하러 많이들 온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5살, 8살 천방지축 아들 둘과 함께라 앉아서 올라가는 기차편을 택했다. 앉아서 가니 편하겠다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천천히 올라가는 기차 안은 찜통같이 더웠다. 에어컨은 커녕 열려있는 창문도 몇개 없어 앉아있으니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보다 지겨워 하는 아이들을 달래는 일이 더 고역이긴 하였다. 

 

스노우도니아 정상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기차역과 기차. 꽤나 긴 시간을 타야 한다. 약 40분

  도착해서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10분가량을 더 올라가야 했다. 돌무더기 같이 느껴지는 가파른 길을 올라가자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트레킹으로 밑에서 부터 올라오는 사람들은 장난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나무가 없는 산이라 시야는 확 트여있지만 그늘이 거의 없다는 악조건을 가지고 있으니 굉장한 난코스일 것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그렇게 헉헉대며 조금 더 올라가 내려다 본 광경은, 쓸데없는 고생은 아니였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스노우도니아 정상에서

  내려올 때도 덥고 지루한 기차를 다시 타야했다. 올라갈 때에는 언제까지 가야하나 하는 막막함이 있어서 더 지루했었던 것 같다. 내려갈 때는 한 40분 가야한다는 걸 알고 가니 그나마 견딜만 했다.

 

  내려와서는 쉬면서 캠핑장에서의 여유를 즐겼다. 그러다 아차 싶었다. 신랑의 생일이었다. 그냥 넘어가기엔 뭔가 찜찜했다. 마침 음식 바구니 안의 햄버거 빵이 눈에 띄었다. 촛불만 있으면 되는데.. 촛불. 나뭇가지를 꼽자하니 불이 붙질 않을 것 같았다. 신랑이 아이들과 놀고 있는 사이 웬디의 신랑인 메튜에게 가서 도움을 청했다. 메튜의 대학 친구인 샘도 있었는데 샘이 자신의 차에 불을 피우는 향이 있다고 그걸 활용해 보자고 하였다. 햄버거 빵에 향초 막대기를 꼽은 임기응변의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 캠핑장에서 42번째 생일을 축하하였다. 

 

  이렇게 우리의 영국에서의, 유럽에서의 마지막 캠핑이 끝이 났다. 한동안 유럽에서의 사진을 들여다 보지 않았다. 꾹꾹 눌러놓은 그리운 마음이 사진을 보면 마구 튀어나와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장소별로, 날짜별로 사잔을 찾아보며 그날의 기억들을 추억한다. 그리고 이번 주말엔 어디를 가볼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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